본문 : <눅19:1-10>
1. 삭개오 ‘순전, 순결’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세리장이 살고 있었다 오늘날의 세무서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의 세리들은 개나 돼지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민족의 배반자, 매국노로 인식되었고 로마의 앞잡이들로 불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막강한 공권력으로 동족들의 세금을 공출했고 과다한 세금을 징수한 뒤 중간에서 착취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산 에는 사자 광야 에는 독사 성안에는 세리" 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였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랍비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선생님 길을 가다가 세리와 개가 쓰러져 있으면 누구를 먼저 도와 줘야합니까?" 이처럼 세리를 개와 비교하여 가치를 설명할 만큼 세리에 대하여 멸시하는 마음이 있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며 부자이고 신체적으로는 키가 작았다(열등감). 당시 세리는 적국인 로마의 협력자들이며, 또한 자신들의 부의 축적을 위하여 부당하게 많은 세금을 거두었으므로 유대인들의 멸시와 증오의 대상이었다(소외감, 죄책감). 그러나 예수님을 간절히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며 그러한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 영접하게 되었다.
2.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는다.
삭개오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 경제적으론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으나 그는 아마 열등감속 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동족들의 손가락질을 받았기 때문에 심한 죄책감 속에 시달리기도 했을 것이다. 삭개오가 예수님 앞에서 하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은 영적 존재라서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하나님이 은혜가 아니면 영혼의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삭개오를 통해서 교훈 받는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마 5:3-10)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환경적이든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약점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열망하게 된다. 주님은 우리의 약점을 통해서 그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야곱은 에서에 비해 육체적으로 약했다. 모세는 80세에 부름을 받았다. 기드온의 정신은 약했다. 그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경적 고통은 메시야를 대망하게 했다. 제자들의 신분적 배경은 초대교회에서 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시 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고후 12:9-10]
(고후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3. 간절히 찾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사모했습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욕심을 품는다' '만나보고 알아보고 싶은 맘이 있다'라는 뜻이다.
사람은 욕심 덩어리기 때문에 모든 욕심을 버리긴 어렵다 그러나 거룩한 욕망은 품도록 해야 한다.
삭개오는 빨리 달려갔다. 내적으론 키가 작다는 장애가 있었고 외적으로는 인산인해라는 장애가 있었지만 그는 사모하는 맘으로 달려갔다.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으며 마음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계속해서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간절히 예수님을 보고자 했던 삭개오를 주님은 보셨다.
“보시고”
(요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눅 21:2)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5:27)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예수님은 보시는 분이시다. 살피시는 분이시다. 지금도 전심으로 주님을 구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렘 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사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4.“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여리고를 통과하신 목적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 올라갔다. 그는 주님을 만나고 싶은 순수한 맘에 장애를 뛰어 넘은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 먼저 삭개오를 불러 주셨다. 주님은 우리를 먼저 알아보시고 개인적으로 불러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삭개오의 집에 유하셔야겠다고 말씀 하셨다. 그동안 삭개오의 집에는 돈을 뜯는 건달, 로마군인, 이자놀이 하는 물주 등이 자주 왔는데 주님이 오신다는 제의에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만나시기 원하시고 심령에 유하시길 원하신다.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 주님을 자기의 집으로 모셨다. 우리도 주님의 부름 앞에 속히 순종함이 필요하다.
당시 여리고는 가이사랴 및 가버나움과 함께 팔레스틴의 3대 상업 중심지였기 때문에 세무 업무의 역할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 번성한 도시였던 여리고에서 세리장이란 직책의 삭개오는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은 구걸하는 소경의 영혼도 불쌍히 여기셨으며, 동족에게 죄인 취급을 당한 부자 세리장 삭개오의 영혼도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신 것이다.
1) 이 세상에 오신 목적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2) 거라사인의 땅에 가신 목적
(눅 8:26)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눅 8:27)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3) 사마리아를 통과하신 목적
(요 4: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4) 예수님의 행적에 불필요한 방문이 있었는가?
내가 머문 곳과 머물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가? 또한 시간을 가장 값지게 보내는 방법을 연구해보자.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5. 예수님께 나아가려고 했을 때 어려웠던 조건
① 신체적 조건 : 작은 키
② 환경적 조건 : 많은 사람, 세리장
1차 시도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2차 시도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삭개오에게 온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다. 삭개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때 맞이해야 하며,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을 때 사랑해야 하며,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봉사해야 한다.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오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삭개오가 영접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있으며, 봉사에 참여하고 있으나 진정으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요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어려운 조건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했다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어려움은 큰 축복을 받기 위한 중간 과정이다.
지금도 사랑 안에서 허락되어진 작은 어려움에 좌절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연단의 과정을 장애물로 여기지 말자.
6.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뽕나무에 올라가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부끄러움을 이겨내자. 그는 바램만 있었던 것이 아닌, 실제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예수님은 속히 내려오라고 하셨다.
우리 중에는 생각만 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창피함을 이겨내야 했다. 물론 침상을 들어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7.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① 이름을 미리 알고 계셨다.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다. 예) 나다나엘
② 사람들이 꺼려하는 집에 들어가시고자 했다.
삭개오의 기쁨을 생각해 보라.
내게 오고 싶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8. 영접한 삭개오의 모습 : 재산의 포기
그리스도를 믿는 나는 어떠한 증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내 이기적인 삶을 포기하고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삭개오는 변했다.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남의 것을 토색 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자발적으로 결단했다. 이처럼 복음이 제대로 들어가면 사람은 변하게 된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 집에 구원이 임했다고 선포 하셨다.
주님의 방문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시기 위함이었다. 우리에게 임하시길 원하시는 주님을 기쁜 맘으로 영접하자.
삭개오를 개인적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은 오늘 이 아침에도 나에게 개인적으로 찾아오신다.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예수님은 오직 내 이름만을 부르신다. 예수님은 나의 이름을 부르신다.
변화된 삭개오!
(엡 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